문화생활

연극이야? 만화야? 만화 보다 더 만화 같은 연극 유리가면

秀니가그리운날엔 2013. 5. 7. 15:35

 

 

‘연극이야? 만화야?’

출렁이는 갈색 웨이브 머리,긴 다리에 오똑한 콧날,테리우스를 연상시키는 꽃미남 남자배우가 무대 중앙으로 나오고 그의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시간이 멈춘듯 다른 배우들의 동작이 정지된 가운데 그의 방백이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연극이 아니라 만화 속 한 장면이다.

순정만화의 고전 ‘유리가면’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일본 만화가 미우치 스즈에의 인기만화 ‘유리가면’을 원작으로 99년 초연된 후 2001서울공연예술제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던 연극 ‘유리가면’이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유리가면’은 미모와 든든한 배경을 갖춘 ‘신유미’와 가난하고 볼품없지만 천부적인 연기력을 지닌 ‘오유경’이 연극계 최고 여배우 자리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에 관한 이야기다. 연재를 시작한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결말이 나지 않아 만화계의 ‘네버 엔딩 스토리’로 불리기도 한다.

총 4편의 에피소드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작품은 설리반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과 헬렌 켈러의 인간승리를 다룬 극중극 ‘기적의 사람’ 관련 부분만을 골라 무대화했다. 신유미,오유경 두 인물이 캐스팅되는 과정과 극중에서 펼치는 이들의 연극 장면들이 절묘한 교차편집을 통해 입체적으로 구성됐다. 2시간의 공연동안 쉼없이 진행되는 30여회의 장면전환은 추리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켜 극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한다.

그러나 연극 ‘유리가면’을 만화보다 더 재미있게 하는 요소는 스톱모션,슬로모션,내레이션 등 적재적소에 사용된 만화적 표현기법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주인공의 멈춤동작이 360도 회전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슬로모션으로 바뀌기도 한다. 정지 상태에서 나오는 독백 내레이션을 들으면 마치 인물의 머리위로 말풍선이 떠 있는 듯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음악으로 맛깔나게 흘러나오는 이동준의 영화음악과 합쳐지면 한 편의 라이브 ‘만화영화’가 된다.

만화 속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무대위 배우들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원작만화의 팬이었다면 만화가 연극으로 어떻게 재현되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만화적인 감각의 새로운 연극을 맛볼 수 있다.

‘유리가면’은 올 한해동안 4번째 에피소드까지 모두 공연될 예정이다. 전훈 연출,유지연 이미정 이현화 이젠 출연. 대학로 인켈아트홀에서 공연을 했다
200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