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테네, 이스탄불여행-- 8탄 성 이스탄불 소피아 박물관

秀니가그리운날엔 2013. 2. 11. 03:38

 

 성 소피아 박물관편


 성 소피아 대성당은 비잔틴 제국 시절엔 그리스 정교의 본산지 였을때 성당이었으나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인해 멸망후 오스만 제국(메흐메드 2세)이 건설 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어 아야 소피아라는 모스크로 바뀌어서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구요..터키 사람들은 아야 소피아라고 부른다죠.

 

비잔틴 제국시대에는 그리스 정교의 본산지였다가

그 후에 오스만 제국이 건설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었다해요.

사원 내부에는 비잔틴 시대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벽화들이 남아 있는데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면서 묻혀졌다가 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두 종교 간의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의 세례명도 소피아 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되어 있다네요.


성 소피아 박물관 입구

 

여기서 성 소피아 성당의 역사적 배경을 볼까요?

원래 성 소피아 대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현재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360년에 나무지붕으로 된 작은 교회로 지어 진것이 처음이였답니다.

하지만 404년 알카디우스 황제 시기에 화재로 불타 없어지게 되었으며

 그후 415년에 데오도시우스 2세때 두번째 성 소피아 대성당이 완성되게 되였데요.

그후 두번째에 세워진 건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인 '니카의 발난'때문에 다시 파괴되었죠.

'니카의 반란'이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황비인 데오도라 때문에 생간 반란이였어요

그녀에게 반한 황제가 그녀를 왕비로 삼자,

그녀가 댄서출신의 천민이라는 것과 그녀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것을 문제로 삼은 것이죠.

그 당시 비잔틴 제국에서는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믿고 있었는데

양성론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 동시에 하느님 자신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데

그 당시 이집트에서는 이와는 다른 그리스도는

단지 하느님의 아들이지 하느님이 아니라는 단성론을 믿었으므로

데오도라 역시 단성론을 믿고 있었죠.

결국 이것을 빌미로 삼아 히포드롬에서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키게 되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두번째로 지은 소피아 성당이 파괴되게 되였답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537년 성 소피아 대성당을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하게 합니다.

황제는 밀레도스 출신 이시도로스와 트랄레스 출신 수학자 안테미우스를 채용해

 532년 2월 23일 성 소피아 대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해,

 537년 12월 27일 5년 10개월만에 축성식을 거행했는데,

축성식을 위해 입장하던 황제는 너무나도 감격해서
'솔로몬 대왕이시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외쳤다고 해요.
그러나 553년, 557년, 559년 연속된 지진으로 중앙 돔이 무너지자

황제는 중앙 돔을 2.65미터 더 높여 563년 현재와 같이 만들었대요.

이것이 지금까지 남아 우리가 볼수 있는 성소피아 대성당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세번째로 지어진거죠.
그 이후에 성 소피아 성당은 주인이 한번 바뀌게 되는데.

그것은 오스만 투르크가 이곳을 차지하게 되면서이죠.

이슬람교가 창시되고 많은 영토를 넓혔지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지 못하고 있었죠.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틴 제국을 침략하게 되고 결국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비잔틴 제국이 명망를 한거죠.

결국 성 소피아 대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면서 세운것입니다.

1923년 '오스만투르크'가 멸망하자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인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대규모 복구 사업을 거친 후 회칠로 사라졌던

 비잔틴 모자이크와 벽화들이 어느 정도 빛을 보게 되었지만

대성당 복원을 반대하는 이슬람의 반대로 성당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1935년 2월 1일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난 '성 소피아 성당'은

1500년의 역사를 그대로 증언하는 하나의 보물 창고가 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해요.

현재 성 소피아 대성당 내부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 양식과 이슬람 모스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독특한 역사로 인해 성당 건물 자체만으로도 박물관의 역활을 충분히 하고 있답니다.


성 소피아 성당의 구조는요~

성 소피아 대성당은 그 장대한 크기에 걸맞게 그 당시의 교회의 구조를 잘 나타내고 있답니다.

또한 몇가지 다른 교회에서는 볼수 없는 특징들이 있는데요.

우선 그 당시 비잔틴 동방 교회의 특징은 예배를 중앙에서 보는것으로

카톨릭(로마네스크양식)이 apse나 채플 쪽을 보며 하던 방식과는 다른것이였죠.

또한 비잔틴은 그릭 크로스(더하기 부호처럼 생긴 십자가)를 로마네스크는

라틴 크로스의 평면 형상을 하고 있죠.

결국 이것은 비잔틴 건축 공간은 중심형 공간이고

로마네스크 양식은 직선적이라 하거나

대성당 내에 각각의 채플로 향한 분할 적인 공간을 가지는 특징들을 가지게 하였죠.

성 소피아 대성당도 비잔틴의 건물답게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가 중앙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건물이 직선적이거나 길지가 않은 넓은 정사각형 모양의 평면이죠.
성 소피아 성당이 가진 독창성을 보자면

 안 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돔을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돔식 바실리카식(라틴십자형플랜의

 삼랑식 바실리카에 큰 돔을 씌운 형태)성당이죠.

 본당(nave)중앙에 4개의 대지주를 세우고

그위에 대형 아치와 펜덴티브 구법에 의한 큰 돔을 덮고 있습니다.
동서의 긴 방향으로 가해지는 압력을 크고 작은 절반의 돔으로 받치고,

남북 방향의 압력은 대지벽(563 증설)으로 받친 매우 독창적인 구조래요~

 

성당 내부에 사용된 대리석들은 지중해와 소아시아의 대리석 광산에서 가져 왔고,
성당에 사용된 많은 기둥들 중에는 기존의 신전이나 다른 건축물에서 떼어 오기도 했답니다.
또한 가벼운 재질로 돔을 만들기 위해 로도스 섬에서 특별한 타일과 벽돌이 제작되어 운반 되였데요.
이렇게 지어진 대성당 내부에는 총 107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중 40개가 본당에 나머지는 67개는 2층 갤러리에 있죠.

3개의 돔 형식으로 지어진 대성당의 규모를 보면,

중앙 돔의 높이가 55,6m 넓이가 31.36평방미터,

황제만이 출입하던 중앙 출입구에서 제대 뒷벽까지의 길이가 79.3m,

대성당 전체 길이가 100여미터, 중앙 회중석 넓이가 32,27평방미터

 대성당 전체 넓이 70여 평방미터에 이른답니다.
현재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런던의 성 바울로 대성당,

 세비야의 대성당, 밀라노의 도오모 대성당 다음으로 다섯번째로 큰 성당입니다.

 

 

 

사원 내부에는 비잔틴 시대의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벽화들이 남아 있는데..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되면서 묻혀졌다가

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인지.. 성당 내부는 유럽에서 볼수 있는 성당 처럼 벽화들이 깨끗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많이 훼손되어 있어요. 그리고

성 소피아 성당이라 부르지 않고 박물관이라 부르나 봅니다.

현재까지도 두 종교간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성당 천장부분이예요.. 많이 훼손되어 있죠?

저 벽화들을 지우려고 회칠을 했었나봐요~

 

여기에 동그란판에 글씨가 있죠? 알라 라는 글자래요.. 오스만제국의 유명한 서예가가 썼다고 해요.

맞은편에는 모하메드라는 글자가 있는 동그란 판이 있어요.

 

창문이 있는 부분인데요..여기는 성당 느낌 보다는 이슬람교 느낌이 더 있는거 같아요.

터키 스럽죠?^^

 

 

2층에 올라오면 재밌는 사실 한가지는 2층에 올라와서 정면에 서면 아야 소피아가 멋지게 펼쳐 보이는데요..바로 이자리가 여왕이 미사를 드리던 자리라는것이예요.

왕은 1층 본당 앞에서 미사를 하는데 황후는 황제를 내려다 보며 미사를 하는것이죠.

 제국은 황제가 다스리고 그 황제 위에는 황후가...ㅋㅋㅋ

참 그리고 말이 이층이지..사실 여기가 아파트 5층 높이가 된다고 해요..

올라오는 길이 대리석 돌로 깔려 경사가 낮은

비스듬한 골목길처럼 올라왔는데요..

 여자들과 노약자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해요.

 

2층 안쪽에 있는 벽화예요~  The last judgement..물론 성당 벽에 모자이크로 만든 것으로 중간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고 인자하게 만들어 놓았답니다.

주위를 금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매우 화려 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보입니다.

 아래의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어느 정도가 복원된것인지..

 

 

 

 

2층 구석에 있는 아기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미카엘이 있습니다.

여기 저기 벽화가 남아 있는곳은 거의 찍었나봐요..

후레쉬를 터트리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이 좋게 나오진 않았습니다.

모자이크 정 가운데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좌측에 Emperor John Comnenus 2,

우측에 Empress Eirene이 위치해 있어요.

그리고 황후 바로 옆에는 잘려서 나와 있지 않지만

 이 모자이크가 완성되고 곧 사망한 그들의 아들 Alexius가 있습니다.

 

여기 저기 벽화가 남아 있는곳은 거의 찍었나봐요..

왼쪽편만 사진으로 감상하시죠~

 

여기 사연 깊은 모자이크가 있어요~

정 가운데는 예수님, 좌측에는 Constantine 9 Monomachus, 우측에는 Empress Zoe가 각각 위치에 있죠.
조 황후는 남편을 세번 바꾼것으로 유명한데

남편을 바꿀때마다 모자이크에서 그 얼굴을 지우고 새로운 얼굴을 새겨 넣었다고 해요..

결과적으로 황후 자신의 얼굴을 젊을 때의 모습 그대로지만

세번째 남편은 늙어서의 모습이 새겨져 있죠.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에 불만스러워했던 조각가가

예수님의 눈빛을 황후쪽으로 째려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ㅋㅋ

 

 

 

성당을 나오면서 보니... 들어올때 뒷쪽 상단에 있어서 못 봤던 벽화가 입구에 또 있었네요.

또한 거울로 벽화를 볼수 있게 만든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벽화 역시 모자이크로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앉고 있고 또 좌우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과 보물을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 소피아 성당을 들고 있는 그림으로 두명의 황제를

그려서 그들이 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성 소피아 성당의 전체 모습이랍니다^^

아야 소피아 주위의 4개의 첨답 보이시죠? 이것이 바로 모스크로 용도변경되면서 지어진 것들입니다.

원래 건물에는 첨탑이 없었던거죠. 그러나 묘한 조화가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나머지 박물관에 있는것들을 찍어 보았어요.

감상하세요^^

 

 

 

 

모자이크로 된 성화들이 남아.... 

 

마블 자르